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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金烏山) 맑은 정기(精氣)와 낙동강(洛東江) 뻗은 기운이 마주쳐 맺힌 약목(若木) 땅 덕산동(德山洞)에 민족의 큰 별이 나타났으니 이 분이 곧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혈성(血誠)을 바치신 독립투사(獨立鬪士) 도병철(都炳喆) 선생이시다. 선생의 자는 계현(啓賢), 호는 동포(東浦)로 성주를 본관으로 하며, 기세조(起世祖) 고려전리상서(高麗典理尙書) 도공(都公) 휘순(諱順)의 후예이요. 경유공(慶兪公) 호 낙음(洛陰)의 11대손으로서, 1903년 정월 20일 아버지 상필공(相弼公)과 어머니 장병오여사(張炳吳女士) 사이에서 장남(長男)으로 태어나시었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재질이 특출하고 용모가 준수하시어 일찍이 그 비범(非凡)함을 나타내시었다. 선생은 국운(國運)이 극도로 쇠잔할 때 태어나시어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일본제국주의는 그 독아(毒牙)를 드러내어 춘추(春秋) 8세되시던 1910년 경술(庚戌)에 한반도를 송두리째 삼킨 국치(國恥)의 큰 변을 당하였으니, 온 겨레의 원한(怨恨)과 분노(憤怒)의 통곡(痛哭)과 눈물이 온 누리를 뒤덮었으나 잔악한 일제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더하여만 갔다. 이에 선생은 고향 서재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하시다가 그 책을 덮으시고 신학문을 익혀 국민을 계도(啓導)하고 독립쟁취(獨立爭取)에 앞장서시고자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서 수학(修學)을 하시었고, 일제의 탄압과 착취의 횡포가 날로 심해짐을 보시고는 「내 한 목숨 조국광복을 위해 기꺼이 바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