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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기와 긴급출동한 나철기는 어렵지 않게 오병현을 생포했다 오병. 현은 배가 고파 복숭아를 따다 과수원 주인의 신고로 붙잡혔다 나철. 기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에 강성기가 카빈총을 빼앗았다 야. " , 이놈의 자식아 이 놈을 살려 둬야 다른 놈을 잡지. !" 전쟁통에 악역으로 엮인 두 사람은 년 후인 년에 불갑산에서 58 2009 다시 해후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한국전쟁 때 불갑산에서 학살된 이. 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에서였다 하지만 재회는 유쾌하지 않았. 다 특히 나철기는 옛날 성질이 남아 오병현을 삽으로 내려치려 했고 . 옆에 있던 이들이 삽을 낚아채 가까스로 말릴 수 있었다. 나철기가 증언한 빨치산 감옥 은 실재했을까 빨치산 출신 김영' (?)' ? 승 년생 은 감옥의 존재를 완곡히 부정한다 당시 군경의 공세(1935 ) . 가 계속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수십 명이 구금되는 시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빨치산 감옥이 없었다고 단언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 다 더군다나 한국전쟁 전후에 경찰 정보원을 하거나 우익반동으로 . 찍힌 이들이 빨치산과 지방좌익에 의해 학살된 사례를 보면 더욱 그 렇다 장성군 삼계면 발산리 오달근 년생 의 증언에 의하면 삼. (1935 ) , 계면 발산리 서발마을 송윤식이 한국전쟁 전 경찰정보원을 하다가 빨치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또 북한군 점령 초기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 자위대는 내촌마을 내산( 마을 강씨 집안 수십 명을 처형했다 경찰이었던 이가 전 좌익) . 6.25 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경찰은 . 6.25 직후 남쪽으로 후퇴했고 남은 가족들만 불법적으로 처형되었다 어, . 떤 명분으로도 그들의 죽음이 합리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 3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