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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교선은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청원군 낭성면 성대리(琅城面 城坮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미원면(米院面)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같은 동리에 거주하는 박우동(朴雨東)과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격문을 각 동리에 회송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4월 1일 거사 당일 청원군 미원면 장터에서 인근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지난 3월 30일의 만세시위와 대규모의 검거선풍에도 불구하고 군중의 사기는 드높았고, 연일 계속되는 만세시위에 동원 인원수와 규모에 있어 청원군 내에서 일어난 시위운동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2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항고하였으나 6월 9일 경성복심법원과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