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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삭발 창씨 등 왜정이 날로 포학하여지자 조국침략 죄를 크게 꾸짖는 수왜 10조 죄문을 작성 이를 전국 각처에 유포시키고 동지들을 규합 항일운동을 광범하게 전개하든 중 왜경에게 체포 수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선생은 피체되어 수많은 동지들에게 과를 미치게 하느니 보다 차라리 자기 혼자서 대결할 것을 다짐하고 왜경주생주재소를 찾아가 그들의 죄상을 정면으로 논박하고 포박하려는 왜경 수명을 질책 구타한 후 자결로 민족의 숙원을 표명하리라 하고 자문하셨다. 자기의 몸 동맥을 끊어 선혈을 왜경에게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숨을 거두었으니 때는 민국 24년 임오년 서기 1943년 5월 23일이다. 국록을 먹고 세도를 부린 자들도 감히 하지 못하던 살신성인의 의로를 선생은 일개 포의한사로서 당당히 걸으셨으며 33세를 일기로 그 청춘을 마치셨다. 광복 후 국가에서는 그 공훈을 기르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