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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정도의 토굴은 높이가 에 불과해 웅크리고 있어야 5 (16.5 ) 1 m㎡ 했다 그들이 나무로 된 문에 달려들어 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나. . " 둘 으쌰 사실 보초가 없는 토굴 문을 부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 !" 았다. 이윽고 문이 부서지자 나철기 등 구금자들은 산 아래로 흩어졌다 하. 지만 보름간 쪼그린 상태로 갇혀 있어 뛸 수 없었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나철기는 다리를 끌다시피하며 산 아래로 내려갔. 다 나철기가 빨치산 감옥에서 탈출한 것은 대보름작전이 개시된 . 년 월 일 오전의 일이었다1951 2 20 . 불갑산 호랑이 빨치산 감옥에 갇히다, 철기 고생 억수로 했는데 집에서 쉬었다 오게 해보지서장이 신문" , , . " 지에 쇠고기를 싸주며 말했다 알았지라 고개를 꾸벅 숙인 나철기. " . " 는 두 달 만에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수복 직후 해보지서 유영하. 가 지서 보초를 서라고 한 이후 나철기는 한번도 집에 가지 못했다. 그런데 나철기는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집으로 직행하지 않았다 자. 신이 해보면 문장지서에서 보초 선 것을 사람들이 알았기에 집에 가 는 길에 빨치산을 만나면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았다. 결국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해보리 모산마을 지인 집으로 가 주인 아낙에게 쇠고기를 주며 갈아입을 옷 좀 구해주소 라고 부탁했다" " . 구해 입은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가 집을 나설 때였다 어이 철기. " , " 뭐시여 뒤돌아서는 순간 불이 번쩍했다 정신을 차리니 사방이 컴" ?" . 컴했다 잠시 후 어둠에 적응되자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습한 . . 공간의 벽에는 통나무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는 어림짐작으로 . 자신이 토굴에 갇혔음을 눈치챘다 년 월 일의 일이다. 1951 2 5 . 사실 나철기가 빨치산 감옥 에 갇힌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 다 해방 직후 대한청년단에 가입한 그는 해보지서 의용경찰이 되어 . 보초를 섰다 사실 그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해보면과 대동면 신광면. , 에서 알아주는 주먹잽이 였다 세에 아버지를 잃고 그때부터 집' ' . 12 , 안 농사일을 도맡아하던 그는 십대 중반부터 마을 어른들과 물꼬 싸 움을 벌였다 나철기의 증언이다. . 나는 살밖에 안 먹었고 근디 뭐이라고 하더니 뺨을 때려 아" 16 . . !~ 그러니 맞고 생각하니까 부애가 나서 요렇게 조금 밀킁게 미니까. ( ), 힘아리 없이 발캉 그냥 논둑으로 떨어지제 워매 이거 암것도 아니구. 나!" - 3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