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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교사로 이념과는 상관없는 평이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인민군. 이 점령하면서 삼서면에서는 그 남매만큼 요긴한 인물은 없었다(?) . 지프차를 타고 다니며 확성기로 당의 정책을 홍보하는 일에는 성악 가 출신의 김윤신이 적임자였고 학교 선생인 김묘신 또한 여맹위원, 장으로서는 적합한 이였다. 울며겨자먹기식 완장 생활 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다만 오지였' ' . 던 장성군 삼서면은 군경의 수복시기가 다른 곳에 비해 늦었을 뿐이 다 년 월 말 장성군 삼서면에 이웃한 태청산으로 입산했다. 1950 12 . 산에 편안한 가옥이 준비되어 있을 리 만무다 한겨울에 나무와 짚을 . 이용해 움막을 쳤다. 요런 식으로 짚으로 짚 엮어서 요렇게 해요 그러고서 나무 모두 " , . 다 짤라 내켜 갖고 인쟈 거시기로 마람 엮는다고 하지요 지붕할려, ? 면 마람이라고 있잖아요 그걸 엮어서 이렇게 둘러요 그럼 바람이 . . 조금 덜 들어오고 조금 보온이 되지요 그렇게 해 놓고 거기 가서 , . 자는데 오죽이 춥고 오죽 헐 것인가요 우선 안 죽을라니까 그리 피. 난 온 격이 되지요." 짐승도 살 수 없는 움막은 그나마 토벌이 시작되면 군경의 발에 걷 어 차이고 불에 태워지기가 일쑤였다 낮에는 부서지고 밤에는 다시 , . 움막을 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태청산은 은폐물이 적어 빨치산이 활동하기 부적합한 곳이었다 토벌. 대가 본격적인 진압작전을 펼친다는 소문에 삼서면당은 대보름작전' ' 일 전인 년 월 일 불갑산으로 이동했다3 1951 2 17 . 군 고위장교에 의해 석방된 여맹위원장 녹사태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난 후 태청산에서 나철주 김묘신 ( 증언 삼서면당 위원장은 후일을 기약하며 당 조직의 해산을 선언했) 다 고향으로 내려온 김묘신은 가족의 권유로 지서에 자수를 했다. . 자수라고는 하지만 인공시절 면당 여맹위원장이라는 감투는 결코 적 지 않은 죄 였기에 그녀는 불안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 . 끽 하는 소리와 함께 군 장교가 삼서지서에 들어서자 지서장이 경례' ' 를 올렸다 여기 김묘신양 있지요 네 즉시 풀어 주시오. " ?", " ", " " , " 네 전시에 군 장교의 요청은 감히 지서주임이 거부할 수 있는 일?" 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프차를 타고 온 군 장교가 고위직에 있는 . 상관의 명령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김묘신이 석방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실. 은 사촌여동생 남편의 힘이 작용했다 일제강점기에 군인이었던 사촌. 제부는 해방 후 광주서중학교에서 배속장교를 하다가 국방경비대에 - 3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