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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최고의 선각자, 독립운동가 유기연(柳基淵)선생 유기연(柳基淵,1861~1934)公은 晉州柳氏 宰臣公派26세손으로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287번지에서 출생하셨다. 公께서는 구한말의 시대를 앞선 선각자로서, 신문물로 민족사업을 구현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자랑스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훗날 우리나라 최고의 모범 기업인이자 후예 독립운동가인 유일한 박사를 길러낸 훌륭한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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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초기의 출향 인사로서, 성공한 사업가</b> 公께서는 유년 시절부터 영민하고 깨우침에 남다른 재목이었는데, 나라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1880년대 큰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 한양과 개성을 거쳐 당시 국내 최고로 번성한 도시인 평양에 정착하셨다. 여기에서 우리 최초의 장로교 신학교를 세운 미국인 선교사 마펫(Samuel Moffett, 마포삼열, 1864~1939)에게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고, 당시 많은 미국인들과 교류하면서 국제정세를 일찍이 파악하고, 선진 사상과 독립의식을 고취하게 되셨다. 公께서는 이렇듯 개화사상과 세계관을 확립한 이후,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미국 싱거社 재봉틀의 이북지역의 총대리점 운영과 한중일 간의 무역업 등으로, 당시 평양에서도 명망 높은 큰 富를 이뤄내었고, 1891년에 忠州金氏 기복(金基福, 1873~1958) 여사와 결혼하여, 6남 3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이 바로 유일한 박사이다. <b>모든 재산은 항일운동 자금으로, 일생의 독립운동가</b> 1900년대 들어, 公께서는 사세를 확장해 가면서, 항일운동 조직의 서북지역 재정책임자를 맡고, 당시 서북지역과 만주 등지의 여러 항일운동가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본인의 재력 대부분을 쓰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셨다. 맏딸 선형에게 두만강을 건너 만주의 항일운동가에게 자금 전달과 연락책을 수없이 하게 하였고,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진 발생으로 재미동포 재해의연금 모금에 당시 거금인 500圓을 기부하는 등, 자신의 돈을 국내외적으로 아낌없이 헌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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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선각자 아버지, 드러나지 않은 교육자</b> 公의 이러한 큰 세계관은 국운이 쇠퇴해 가던 구한말에 상상 하기도 힘든 자녀교육으로 발현되었다. 9살의 장남 一韓을 홀홀단신으로 미국에 보냈으며, 3남 明韓은 중국에, 5남 東韓과 6남 特韓은 일본에 유학시키고, 세 딸도 전부 국내외에서 대학 교육까지 시킨바, 아들딸 구별않고 최고 인재를 육성하여, 어려운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심을 자녀교육으로 승화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