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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태에서 죽어 간 성악가 삼서면당 조직원들은 태청산에서 불갑산으로 이동한 지 일만인 3 년 월 일 불벼락을 맞았다 아기 울음소리와 빨래처럼 널린 1951 2 20 . 시신을 뒤로 하고 김묘신이 찾아간 곳은 어머니가 피난 가 있던 전, 남 영광군 염산면 오동리였다. 김묘신의 외가였지만 그 마을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빨치산 을 숨겨 주었다가는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 문이다 결국 그녀는 마을 뒤 밭에 땅굴을 파고 일주일을 지내다 동. 상에 걸렸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가에서도 눈치를 줘 진물이 . , 흐르는 퉁퉁 부은 발을 이끌고 장성군 삼서면 당 조직이 있는 태청 산으로 갔다. 오빠 불갑산에서 헤어진 오빠 김윤신 가명 년생 을 기적적으" !" ( , 1923 ) 로 만났다 하지만 오빠는 아무데나 배겨 있을 것이지 무엇 때문에 . " 다시 찾아왔냐 고 힐책했다 여동생의 안전을 걱정하는 오빠의 애절" . 한 모습이었다. 태청산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군경의 공세가 시작되자 삼서면. 당은 장성군 삼서면 석마리 녹사태 마을로 이동했다 녹사태는 부촌. 이기에 식량도 확보할 요량으로 간 것이다 김묘신이 다리를 절룩이. 며 녹사태 마을에 도착한 것은 년 월 일 새벽이었다1951 3 23 . 인민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빨치산이오 밥 좀 지어 주시오 라는 빨" . " 치산의 요청에 주민들은 묵묵히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밥을 푸짐히 . 먹고 곤한 잠에 빠진 빨치산에게 청천벽력의 소리가 들렸다 탕탕탕. '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토벌대의 총격 소리였다' . 김묘신이 오빠의 손을 잡고 뛰려 했으나 김윤신은 여동생의 손을 뿌 리쳤다 둘 중 하나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마. ' ' . 을 앞 개울을 뛰는데 눈에 전깃불이 튀었다 그녀가 팔에 관통상을 . 입었다. 피로 물들은 팔과 진물이 흐르는 발로 야산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 가슴은 정지하는 듯했다 오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 다 서울대 음대를 나와 성악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윤신이 토벌대의 . 총격에 저세상 사람이 됐다. 인도 지나 전쟁터에서 뛰어내린 조선인 청년 기차가 커브 길을 가느라 속도가 낮아질 때였다 하나둘 셋 김윤신. " " 이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탈출에 성공한 김윤신은 년 학병으로 . 1944 - 3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