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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또 모의사를 지어 추모하였다. 1666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고 문형의 영예를 얻었다. 1708년 북관대첩비가 세워졌다. 1713년 충의라는 시호를 받고 1788년 조정에서 불조의 전례를 인정하였다. 1970년 전국 유림의 발의로 진주에 충의사, 의정부에 충덕사를 세웠다. 선생의 전공을 기록한 북관대첩비를 1905년 일본군이 강탈하여 동경 야스쿠니신사에 둔 것을 2005년 환수하였다. 북한은 함경도 임명의 본래의 위치에 비를 복원하여 국보로 지정하였고, 남한은 그 이모비를 경복궁・독립기념관・송산묘소・충의사에 건립하였다. 선생은 시문에 능하여 많은 글을 지었으나, 전란으로 거의 다 없어지고, 시와 장계 등만 남아 있는데, 농포집으로 몇 번 간행되었다. 아들은 장례를 마치자 선생의 유언에 따라 진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이후 자손들이 진주 사람이 되어 번성하여 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13대 종손 규섭은 독립운동에 공헌하여 유공자가 되었다. 가호서원은 오래되지 않았으나, 그 명성과 공적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14대 종손 기민이 논어학교를 개설하여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등 서원의 모범이 되고 있다. 여러 유림이나 후손들의 중론이 농포선생의 사상과 행적 그리고 서원의 역사를 담은 묘정비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서원의 침동섭 원임과 기민 종손이 불초를 찾아와 청문하기에, 크게 사양하지 않고 글을 짓고 뒤에 명을 붙인다.
위대한 농포선생, 문무를 겸전했네. 나라에 한몸바쳐, 창의에 앞장섰네.
충의에 바탕하여, 왜적을 섬멸하여, 함경도 수복하니, 나라가 蘇復됐네.
친자식 보살피듯, 백성을 사랑했네. 목민관 모범되어, 유애비 세워졌네.
북인이 발호할 때, 바른길 걸었나니, 반정후 원수추천, 효성에 외직자원.
시문에 뛰어나고, 학문도 깊었다네. 경학과 예학으로, 한강이 칭허했네.
구국의 수훈에게, 모반죄 무슨말가? 간당의 악랄한짓, 원통타 옥사라니.
두아들 유언따라, 진주에 정착했네. 후손이 창성하여, 원통함 풀었다네.
유림과 후손들이 흠숭할 곳이 없어, 서원을 창설하여, 가호라 이름했네.
서원의 설립목적, 첫째가 존현양사. 현세에 적응하여, 전국에 모범이라.
선생의 구국정신, 잘배워 다시살려, 위대한 한민족이, 세계에 앞서가리.
무술 2018년 중추절에 문학박사 경상대학교명예교수 김해 허권수 근찬 14대손 문장 근서 진주시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