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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년 구두수선20 나주에서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로 이동한 윤민용은 년 월 1951 3 15 일 체포되었다 광주경찰국으로 이송된 그는 사형을 구형받고 최종 . , 무기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이유는 명을 죽였다는 것인데 실제로 . 3 , 그는 총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다 기본적으로 . . 생산유격대는 비무장이었고 그는 천성적으로 누구를 죽일 수 있는 , 심성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아니 죽이기는커녕 남에게 피해를 끼치. 거나 마음의 상처를 줄 인물이 아니었다. 목포와 대전 서울 마산에서 옥살이를 한 그는 만 년 만에 석방되, , 15 었다 무기징역형에서 년형으로 감형되었기 때문이다 석방된 그가 . 15 .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없었다 전남도청 앞에 구둣방을 열어 구두닦이. 와 구두수선 일을 했다 년간 일을 하면서 그는 눈과 귀와 입을 . 20 닫았다 누군가 아는 체할까 항상 머리를 숙이고 일했다 징역살이나 . . 다름 없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다만 불갑산에서 죽어간 동지들과 가. 족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하고 죄스러. 웠다. 제수 동생 윤민용의 아내 와 젖먹이 조카의 시신을 수습한 윤민용의 ( ) 둘째 형은 평생을 경찰에게 시달렸다 빨갱이 형제를 둔 죄 였다. (?) .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윤민용의 아들도 연좌제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야 했다 원래 법학과에 들어가 법조인을 꿈꾸었던 그는 아버지의 과. 거를 알고 공대로 방향 전환을 했다. 총대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불갑산 생산유격대장 윤민용은 세 사람을 죽인 죄 로 년간 감옥살이했다 공무원이었던 그가 돌아갈 직장(?) 15 . 은 당연히 없었고 전남도청 앞에서 년간 구둣방 일을 해야 했다, 20 . 죄 없는 아내와 젖먹이 아들이 학살되고 가족들이 연좌제로 고통받, 은 게 그의 죄일까. ▲ 불갑지구사령부가 주둔했던 용천사 박만순 . ⓒ - 3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