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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선생은 대구(大邱) 사람이다. 1940년 2월 중순 그는 양산 통도사(梁山 通度寺)에서 승려인 조형길(趙亨吉)과 동지 현영만(玄泳晩)과 함께 국권회복운동에 신명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의논했다. 이들은 그해 4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뜻이 맞는 동지 이형수(李亨洙)와 함께 나라의 걱정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항일지하단체인 무우원(無憂園)을 창단했다. 그리고 "민족정신을 사수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문장연구」, 「글공부」란 유인물을 발간하여 동지와 학우들에게 배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는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이러한 사업을 계속하다가 일경에 탐지되었으며 1943년 6월에 피체되었다. 1944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