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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굶어" " 하지만 군입대 대상에서 빠졌다고 징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 었다 전남 목포 포목점에서 년간 일한 윤민용은 년 월 초 부. 5 1944 10 산에서 관부연락선에 몸을 싣고 오사카로 향했다 각 지역의 공장과 . 광산에 배치되기 전 수용소는 수천 명의 조선인 청년이 대기하고 있, 었다. 함평군 엄다면에서 학교 선생을 한 박말갑이 이 사람들은 농한기 " 에 가구공장에 다녔습니다 라고 둘러댔다 동향 사람들이 쉬운 일을 " . 맡게끔 함평읍과 학교면 사이에 가구공장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이다 대패 한 번 잡아보지 않은 윤민용도 목수 경력자로 인정 되. (?) 었다 그렇지만 윤민용은 남의 나라에 와서 강제노역하는 것 자체가 . 싫었다 어떻게 하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를 고민하던 그에. ' ' 게 박말갑이 귀띔해주었다. 무조건 굶게 다음엔 어쩐다요 내가 알아서 함세 그러잖아도 허" " " ?" " " 약체질인 윤민용이 일주일을 굶자 뼈만 남게 되었다 병원에서 검진. 을 받았지만 병명을 알 수가 없었다 같이 따라간 박말갑이 같이 자. " 랄 때 봉께 이 친구가 덴칸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덴칸은 조선말, " . 로 지랄병 간질 이었다 본격적으로 작업배치를 하기도 전에 시체 치( ) . 울 생각에 일본인 감독은 윤민용을 징용 해제시켰다 개월 차이로 , . 7 징병을 면제받은 그가 병을 핑계로 징용이 해제되어 고향으로 돌아 온 때는 년 월이었다1944 12 . 건국준비위원회 치안대장 윤민용은 가방끈이라고는 서당에 년 다닌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3 . 목포에서 세부터 년간 포목점 생활을 한 데 이어 징용으로 일본17 5 까지 다녀와 시골에서는 똑똑한 젊은이 로 소문이 났다 해방 후 여' ' . 운형 김규식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는 전국에 들불처럼 번졌다 함· . 평군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일본에서 유학하고 조선에서 관료를 지낸 이재혁이 맡았다. 함평군 해보면에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우식 가 만들어졌고( : ) , 산하에 치안대가 꾸려졌다 윤민용은 해보면의 치안대장을 맡아 건국 . 활동에 젊음을 불살랐다 정국은 정신없이 변화되었다 미군정의 진주로. .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전환되었지만 미군정은 이를 불법화 했다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따라 해보면에서도 지지 반탁세력으. · 로 나뉘어 대립했다 어떠한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남조선에는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다. 윤민용은 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해보면 산내리 송산마을 책1946 - 3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