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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이경덕(이살룸, 李撒路美) 이경덕 지사는 1886년 9월 7일 월곶면 군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3세의 나이로 성서학교(이화학당) 신학생 신분이던 이경덕(이살룸, 李撒路美) 지사는 3.만세운동에 참여했다. 3.1만세운동 당시 홍보물과 독립선언서 등을 수습해 고향으로 내려온 이경덕 지사는 월곶면 고양리에서 성태영, 백일환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3월 22일 군하리장날을 맞아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경덕 지사는 여성들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주창하는 등 월곶면 만세운동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도받고 항소했으나 8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경덕 지사는 수감 중 고문으로 병을 얻어 1919년 10월 27일 가출옥(가석방) 되었고, 출옥 후에는 고향인 월곶으로 내려와 목회자의 삶을 살다 1948년 8월 13일 6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소천 후 군하리 뒷산 어딘가에 장례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묘지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이경덕 지사는 결혼했으나 자녀가 없어 파혼하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했다. 어르신 채록) 김포의 잔다르크라고 불리던 이경덕 지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김포지역에서 유일하게 여성독립운동가로 서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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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면민 만세운동 월곶면민 3.22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2일 통진장날(군하리)을 맞아 수백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김포지역 최초의 만세시위였다. 3.22만세운동은 당시 이화학당 학생으로 3.1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이경덕이 독립선언서 수십 장을 옷 속에 감추고 고향인 월곶면 군하리로 돌아와 지역 인사들에게 배포하고 모의하면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독립선언서를 받은 성태영, 박용희, 조남윤, 윤종근, 최복서 등은 동지를 규합해 태극기를 만들고 의거를 사전에 결의, 3월 22일 오후 2시 통진향교 앞에 집결해 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며 군하장터와 면사무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8일 밤에는 정인교, 민창식, 당인표 등이 주도해 마을 뒷산인 함반산에서 횃불시위를 벌였고, 3월 29일 오전에는 조남윤, 최복석, 임용우, 윤영규 등의 주동으로 각각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3.22 월곶면민 만세운동은 3월 23일 오라니장날(양촌)을 맞아 수천명의 군중이 참가하는 만세운동으로 확산되는 등 김포 전 지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2022.12.21일 (월곶면민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모든 선열들의 뜻을 기리며) 월곶면주민자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