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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생림.가락.이동의 3.1독립운동 지금은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로 편입되었지만 1919년 4월 10일과 11일 양일간 김해군 명지면 중리와 진목리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명지면 사립 동명학교 교사 이진석은 동창생 경성약학학교 김연복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양왕석, 이규회, 김영두, 지봉구 등과 의기투합하여 4월 9일 밤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비롯한 격문을 제작하였다. 4월 10일 이진석과 동지들은 동명학교 재학생 김청천, 서갑순 등을 명호시장에 비밀리에 합류시킨 후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학생과 장꾼에게 나눠주고 약 2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의 무력행사로 군중은 흩어지고, 주동인물들은 4월 11일 밤에 다시 진목리에서 약 50명의 주민과 함께 독립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군중은 해산되고, 이진석, 박두성, 양왕석, 이규회, 지봉구, 김영두, 정소목 등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명지 3.1독립운동 중심인물 이진석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1896~1970 / 징역 2년, 박두성 / 대통령 표창(2018) / 1899~미상 /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양왕석 / 대통령 표창(2018) / 1900~1967 /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이규회 / 대통령 표창(2018) / 1903~1966 /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지봉구 / 대통령 표창(2018) / 1899~미상 /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김영두 / 미상 /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정소목 / 미상 /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김청천 / 미상, 서갑순 / 미상 1919년 4월 3일 생림면 봉림리에서 주민 200여 명이 참여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대규모 시위로 발발햇으나 주동자 관련 기록과 증언이 없어 운동의 실상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1919년 4월 3일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 봉림마을 음지바위 아래에서 진주 농림학교 1학년 재학생 문위동의 주동으로 문위호, 윤상기, 변동윤 등 20세 전후의 청년들이 모여 "오호라 창천아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시위하다 해산하였으나 일경은 출동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1919년 4월 16일 김해면 이동리에서 부녀자들 중심으로 약 50명의 군중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주동자와 부상자 등의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