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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당 부위원장이자 함호대 유격대장인 김문현이 비행기의 기총소사로 목숨을 잃었다 김문현을 살려 주는데 도움을 준 오병현은 그의 후임이 되었. 다 박격포 터지는 소리 기관총 소리 소총 소리에 귀가 멍했다 그날 하루. , , . 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몰랐다 군유산으로 후퇴한 그는 다음날인 년 . 1951 2 월 일 불갑산을 다시 찾았다21 . 빨치산이 판 전호에는 민간인들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그런데 전호. 에 쑤셔박힌 이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오병현의 증언이다. . 남자도 어떤 사람은 항문에다가 그렇게도 하고 그렁게 전부 이쟈 죽" . 창을 우리 손으로 다 뺐지요 빼가지고 동네에 가서 괭이 삽 모두 있. , 는 대로 전부 좀 가지고 올라오라고 해서 그래서 동네에 내려가서 광, 암리로 모두 가서 괭이고 삽이고 모두 가지고 와서 실실 다 묻었어, , 요." 대보름작전의 와중에 오병현은 어머니 아내 여동생 딸이 년 월 , , , 1951 2 21 일 신광면 유천리 벽유동 삼영고개 계곡에서 함평군 대동지서 경찰들에게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년 월 일 함평군 대동면 강운리에서 체포된 오병현은 내심 삶을 1952 11 25 포기했다 자신의 이력상 살아나기는 힘들다 는 판단을 한 것인데 기적이 일. ' ' 어났다 함평군 시국수습대책위원장인 한규흥이 오병현의 구명운동에 앞장선 . 것이다 생명의 은인인 오병현을 살리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 한규흥은 전 전라남도 경찰국장 한경록 제 대 경찰국장( 6 : 1951.7.27.~1952 . 에게 부탁해 오병현을 함평경찰서에서 빼주었다 한규흥과 오병현의 11.7.) . 선순환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 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