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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알뜨르란 제주어 표기법상 (‘알’:아래, ‘드르’:벌판 ) }으로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의 이미로 ‘알드르’임. [영문]Altteureu Airfield Altteureu Airfield is a military airfield built by the Japanese during the occupation period in the field near Sangmori, Daejeong-up, Seogwipo-si. The Japanese forced locals to work on the construction. Upon the outbreak of the second Sino-Japanese War in the 1937, Japanese fighters of the Omura Naval Aviation Unit made sorties from this airfield to attack Nanjing, China 700km away.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of Shanghai in November 1938, the aviation unit was relocated to China and this airfield came to be used for training pilots. The name Altteureu is a Jeju dialect of Korean referring to a wide field. 안내판 설명 3 [한글] 알뜨르비행장 일제전적지 일제는 모슬포에 관동군 전초기지의 해군 항공대를 창설했다. 나중에 전황이 서서히 불리해질 즈음 카미카제 기습특공항공대로 연합군에게 자폭기습을 여러 차례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모슬포는 군사도시로서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가 되었고, 제주도 서부지역 일제 수탈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모슬포 비행장에 있었던 아카돔보는 일본군의 자랑이었으나, 이들 비행기가 이착륙하도록 비행장을 만들었던 것은 가련한 우리 선대들로서 나라 잃은 서러운 민초들이었다. 모슬포 비행장 건설에 도내에서 연인원 15만 명 이상이 동원되었다고 전해진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전투기 격납고를 건설했다. 이 유적은 제주도를 일본군의 출격 기지로 건설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지상 건축물로, 진지를 구축하려 했던 인공 동굴은 많이 있으나, 많은 지상 시설물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유일하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알드르 비행장을 수호하기 위해 대공화기를 배치하고, 탄약고를 설치하여 해군공격어뢰정이나 특공비행기의 탄약을 보관했다가 무장시켜 출격시키곤 했다. 이곳 섯알오름은 훗날 6.25 동란의 와중에 예비검속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억울하게 학살되기도 했으니, 오늘날 백조일손묘역이 생겨난 원초지도 된다. 되찾은 나라에서 갈등과 반목으로 혼란한 여러 번의 아픔을 간직한 모슬포 알드르는 우리 후손 모두에게 그 당시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자료제공 '강병대 그리고 모슬포' 편저자 김웅철, 고증 육일훈정훈동지회 이승만 전대통령 모슬포공항 도착연설 송악산 외륜일제 동굴진지 일본군 아카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