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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최치원 신도비
이 비석은 신라 진성여왕(887~897) 떄 천령군(함양군) 태수(신라시대의 지방관리)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23년 그 종가의 문중에서 세운 것이다.
최치원의 자(字)는 고운 또는 해운(海雲), 시호(諡號)는 문창(文昌)이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였으며 뛰어난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태산(현 정읍시), 부성(현 서산시), 천령(현 함양군)의 태수를 지냈는데 당시 국정의 문란함에 실망하여 마지막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다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비석에는 최치원의 약력과 저작물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함양을 다스릴 때 벌하지 않아도 화합이 잘 되었으며 손수 나무를 심었다'라고 하여 민심을 바르게 하고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상림 숲을 조성한 일 등이 당시의 군민에게 높이 칭송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