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page

설왕설래 끝에 오병현의 신원보증으로 한규흥 한규채 형제의 석방이 · 이루어졌다 전에 좌익활동가 김문현의 구명에 신원보증을 한 이. 6.25 후 이번에는 우익지도자의 구명에 신원보증을 한 것이다 오병현은 어. 떻게 우익지도자 한규흥 한규채의 신원보증을 서 줄 위치가 됐을까· . 일제강점기 만세운동부터 학병기피까지 일제에 저항한 오민식 오병현 · 부자는 함평군민들로부터 애국자로 인식되었다 오민식 부자는 민족주. 의자로 한독당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 김구가 암살되자 민족주의자 오민식 부자가 설자리가 좁아졌다 오병. 현의 표현에 의하면 국가가 자신을 관제 공산당 으로 만들었다' ' .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이 진주하면서 오병현은 함평군 야영훈련소 장을 맡았다 의용군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합평수리조합 자리에 있(?) . . 던 훈련소에서 책임자를 맡고 있다가 군사동원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 그는 명의 부원과 함께 군수물자를 수집하고 배급하는 역할을 했다5 . 이후 직책의 변화에 따라 몇 곳을 이동했다가 불갑산으로 입산했다 . 오병현은 함평군당 유격대인 함호대 소속이 됐다 이런 연유( ) . 咸虎隊 로 한규흥 한규채 형제의 구명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다· . 시신 수습에 앞장서 동무가 함호대를 책임져 주시오 라는 말을 마친 김문현 유격대장의 목이 꺾" " 였다 년 월 일 군 경의 이른바 대보름작전 은 육군과 공군의 공동. 1951 2 20 · ' ' 작전이었다. ▲불갑산 유해 발굴 박만순. ⓒ - 3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