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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26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1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③ 선언서 도착, 유인물 배포, 조선독립만세의 함성으로 3·1독립운동이 확산되다 함흥의 조영신은 3월 1일 자전거로 원산에 가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다음날 귀가했다. 3월 2일 밤 이근재 집에서 3,000여매 독립선언서를 등사판 으로 인쇄했고, 조영신은 영생학교 기숙사생들과 태 극기를 제작하는 등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동을 준 비했다. 단천, 안변(3.3), 이원(기독교·천도교, 3.5), 고원(3.6), 함흥 천서(3.6), 이원(3.10), 북청(3.12), 홍 원(3.16), 이원 동면(3.17)에 선언서가 배포되었다. 북청(3.17)에서 안정관(安定官)은 선언서를 건네 주 며 독립운동 참가를 권유했다. 이원에서는 예수교도 박용해(朴龍海)가 서울에서 유인물을 가져 와서 이도 재(李道在)가 3월 8일 500매를 제작해 3월 9일 면내 각처에 배포하고, 3월 10일 읍내에서 대규모 독립만 세운동이 전개됐다. 정평 선덕에서 최도곤(崔道坤)이 3월 13일, “3월 14일 선덕장에 집집마다 2명 이상 참가하라”는 경고 문을 박문익(朴文翼), 주화원(朱和垣) 등을 통해 면내 주민들에게 알렸다. 3월 14일 오후 1시경 선덕시 장 에 500명 군중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 창하고,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여 주재소를 공격 파괴 하며 창고의 무기까지 탈취를 시도했다. 신흥의 한정원(韓鼎元)이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통 고문, 이원의 조창서(趙昌瑞)는 구장들에게 면사무소 에 집결하라는 통고문, 하홍기(河洪基) 등은 각 마을 에 경고문(警告文)을 보내 각각 지역에서 독립만세운 동을 전개했다. 또 2월 말 각각 상경한 북청의 전훤 식(全萱植), 손규철(孫奎哲)과 서울로 유학한 신흥의 이정호(李庭鎬) 등은 서울의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 동을 직접 목격하고 귀향한 뒤, 권유 활동을 통해 동 지를 규합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서봉화(徐鳳 和)의 권유를 받은 최봉천(崔鳳天)과 정수웅(鄭秀雄) 의 권유받은 김명수(金明洙)는 갑산에서 독립만세운 동을 전개했다. 3월 3일 함흥 독립만세운동을 목격 한 이성관(李城官)은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3월 7일 3월 1일 원산부 주요 시설 위치도  함남 도청 함흥공립보통학교 함흥우시장 이근재 집(추정) 중하리예배당 대화정함흥역 만세교 본정통 영생중 함흥고등보통학교 3월 1일 원산부 주요 시설 위치도  일본인 시가지 원산우편국 원산경찰서 원산시장 원산시가-원산리 진성여학교 차광은 집(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