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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25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②’ 릴레이방식으로 전개된 용인 독립만세운동 영남대로의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인 용인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21일 원삼면 좌찬고개에서 만 세횃불이 솟은 이래 24일 김량장공립보통학교 학생 들의 졸업식을 계기로 일어난 학생시위에 힘입은 바 가 크다.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고등경찰과에서 작 성한 문서에 따르면, 용인 읍내에 자리한 김량장공 립보통학교의 첫 졸업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학생 30 여 명이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항거를 벌이며 독립만 세를 불렀다. 어린 학생들의 용기에 힘입어 3월 28 일 북부인 모현면 왕산리의 지역유지들이 시위를 일 으켰는데, 만세행진은 모현면에 이어 포곡면 초부 리-도사마을과 금어리·둔전리를 넘어 군청이 있는 김량장으로 향하였다. 이처럼 릴레이 방식으로 새벽 부터 밤늦도록 마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유지들의 충분한 사전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 다. 이날 출동한 헌병대에 의해 사상 2명, 피체 13명 이 발생했다. 3월 29일에는 서울과 수원에 인접해 있는 용인군 수지면에서는 마을 구장이 주민 1백여 명을 규합해 시위를 이끌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동천리로 나아 간 시위대는 곧 풍덕천리의 수지면사무소로 몰려가 독 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대들의 출동으로 일단 해산한 시위대는 다음날 재집결했는데, 조선헌병대 사령관의 보고에는 ‘폭민 2천명’이 소요를 일으켰다 고 적고 있다. 이날 읍삼면사무소로 나아갔다가 용 인군청으로 향하던 시위대를 향해 헌병대가 총을 발 포함에 따라 사상자 2명이 발생했다. 3월 29일 이후에는 내사면 남곡리를 비롯해 양지 면, 수지면, 기흥면, 원삼면, 외사면, 이동면, 남사면 등 용인군내 전역으로 확산되어 4월 2일까지 치열하 게 전개되었다. 특히 수지면과 기흥면에서는 3월 30 일 2천여 명 이상이 운집해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 였고, 17명이 체포되는 큰 충돌이 있었다. 농촌지역 인 외사(현 백암)면에서도 3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 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용인의 3·1운동 참여인 원은 13,200명이란 조사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나 부 상자에 대한 발굴과 수훈에 는 미흡한 점이 많은 실 정이다. 불타버린 제암리교회 현장 제암리참변 직후 현장을 조사하는 외국인 선교사 (이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