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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24년 3월 Special Theme  3 · 1운동 105주년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양상과 특징” 에서 시작되었는데,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의 주도 하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사천시장으로 이동하였고, 이 과정에서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하는 5천 명 이상의 군중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 였다. 시위대는 사천헌병주재소로 진출하여 기왕 체 포되어 있던 이들을 구출하려고 했는데, 일제는 이 를 탄압하기 위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그 결과 시 위대 측에 사망자 최소 10명을 포함한 60여 명의 사 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에 굴 복하지 않았다. 직후 만세운동을 속개하여 사천헌병 주재소를 파괴하고 총격을 가한 일본 헌병 1명과 보 조원 3명을 처단하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이다. 같은 날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면 읍내에서 윤정섭 (尹貞燮)·석달억(石達億)·우인수(禹寅洙) 등의 주도 하 에 발생한 만세운동도 강서군 시위에 버금갈 정도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오전 10시 무렵 읍내 관공서 와 민가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된 가운데 천도교와 기 독교도를 중심으로 약 1천 명의 시위대가 만세운동 을 일으켰고, 이중 약 200명이 헌병대로 진출하여 헌 병분대장 1명을 처단하고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의 공세적 시위를 전개한 것이다. 이에 일제는 시위 대를 무차별 탄압하는 과정에서 발포까지 하였고, 그 결과 시위대 측에 20여 명의 사망자와 40여 명의 부상자 가 발생하고, 거의 400명가량이 체포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근 1주일 뒤인 3월 10일에는 평안남도 맹산군 맹산면에서 대단히 공세적인 만세운동이 일 어났다. 이 시위에는 맹산군의 천도교도 100여 명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헌병분견소로 진출하여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며 일본군에게 물러갈 것을 요구했다. 이에 일제는 무차별 사격을 자행했으며, 이로 인해 시위대 측에 무려 54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하 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일 제의 헌병상등병 1명을 처단하고, 보조원 1명을 부 상시키는 등 처절한 독립운동을 강행했다. 3월 31일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면 시위 역시 앞선 운동 사례에 못지 않았다. 기독교도와 천도교도의 연합 속에서 추진된 이날 시위에는 3,500명이나 되 는 군중들이 동참하였는데 일제는 이 시위에 대해서 도 무차별 발포를 자행하면서 무려 28명의 사망자와 99명의 부상자를 야기하였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3 · 1운동 직후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 이승훈(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천도교 평양교구 예배당. 평안도지역 3 · 1운동은 기독교와 천도 교  세력이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