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page


34page

낭산 김준연은 한문을 수학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유학중에 조선기독교청년회의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에 주동적으로 참가하였다. 1919년 11월 여운형의 도일 때에는 신인회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환영회를 조직하고 조선독립을 선전하였다. 귀국하여 동아일보기자로 활동하면서 1926년 12월에 안광천·한위건 등과 함께 세칭 ML당이라고 부르는 조선공산당을 재조직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의 발기인이 되고 신간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8년 1월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이른바 ML당 사건이라고 부르는 제3차 공산당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7년형의 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6년 8월에 베를린 올림픽대회의 마라톤 경주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우승 사진을 게재하면서 손선수의 앞가슴에 붙인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실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제4차 무기정간을 당하게되자 주필이던 그는 사장 송진우와 함께 사임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의 간부로 그리고 역대 민의원으로 국회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