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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동키부대의 연혁 및 활약상'에 마우스를 올리시면 각 부대의 활약상이 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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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부대(동키 1,5,14연대)
신천출신의 반공청년들로 구성된 신천부대는 1950년 10월 13일 신천군 내무서 공격을 시작으로 결사적인 반공폭동을 일으킨다음 해주로부터 후최하는 적 트럭행렬을 공격하여 상당량의 무기를 획득하였으며, 동키부대 창설과 함께 주력부대가 레오파드기지 사령부 직할부대인 동키 1연대, 구울산으로 들어갔던 내륙기지 대원들은 5연대, 순위도에서 활동했던 일부 부대는 13연대를 구성하였다. 신천부대는 병력수가 1,000여명을 넘었고, 서해지구 유격전 사령부인 백령도와 순위도방어임무를 담당했으며, 내륙 침투작전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구월부대(동키2, 20연대)
처음에는 장연의 옛 이름인 연풍을 딴 연풍 부대로 조직되어 구울산 유격대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후에 구월부대로 개칭했다. 현역 육군 정보장교인 김종벽대위의 지휘하에 1.4후퇴시에 북한군 26여단을 공격하여 적 참모장을 사살했으며, 51년 3월 21일에는 월사리 반도의 적을 공격하여 사살 239명 생포 54명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장연 백호부대(동키 3, 4연대)
장연 무장치안대 출신의 청년들이 주출이 되었으며 월래도와 초도, 내륙의 불타산과 박석산 등을 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51년 10월 3일 사기리에 기습 상륙하여 북한군을 소탕하고 1,200명의 반공청년 구출, 농우 50두, 양곡 800가마를 노획하는 등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송림부대(동키 6, 8연대)
유엔군과 국군의 북진시 송림에서 조직된 이 부대는 700여명의 부대원이 백령도로 이동, 동키 6연대로 발족하게 되었으며, 51년 4월에는 대청도, 소청도에 집결한 송림청년들로 동키 8연대를 조직하였다. 주요활동으로는 초도를 거점으로 구월부대와 합동, 월사리에 상륙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고, 연고지에 대한 첩보수집과 파괴활동 및 반공인사 구출작전을 벌였다.
수월부대(동키 7연대)
은율지방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수월부대는 장연, 연풍부대와 합류하여 북한국 26여단 성봉부대와 혈전을 벌였으며, 51년 6월 동키 7연대로 발족하여 뒤에는 초도 방어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적지기습 및 첩보수집 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거뒀다.
안악부대(동키 10연대)
안악 반공청년들의 자체 치안대가 모체가 된 이부대는 동키 10연대로 재발족 할 때까지 구월산 공비소탕과 향토 사수를 위해 결사적 혈전을 벌였으며, 이후 구월산에 본부를 두고 안악군 및 재령군을 주근거지로 활동을 전개했다. 51년 7우러 대행면 인민위원회를 급습하여 적 10여명을 사살하고 반공포로 10여명을 구출하였다.
옹진학도부대(동키 11연대)
51년 1월 하순경 창린도에서 약 400여명의 중고생들이 주축이되어 조직했던 학도 의용군부대가 근간이 되었으며 창린도, 어화도, 기린도, 마합도 등을 작전 기지로 적지에 대한 유격활동을 전개했다. 51년 7월 창린도에서 적 38명 생포, 소총 80여정, 중기관총 3정, 무전기 1대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둔 바 있다.
백마부대(동키 15연대)
평북 정주군과 신의주그이 반공 치안대원들이 주축이 되었으며, 51년 5월 대화도에 상륙하여 그 남쪽에 있던 신미도의 적진을 기습하여 중공군 60여명을 사살하고 양곡 5,000여 가마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송화부대(동키 21연대)
연풍부대와 함께 북한국 26여단 선봉대외 교전했던 송화 치안대가 주축을 이루었으며 초도에 본부를 두고, 풍춘읍 기습작전, 월사리 반도 침투작전, 적 해안포대 파괴 및 방공양민 구출 등을 통해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