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page


339page

기독교와 독립운동 한국의 민족운동 내지 독립운동은 기독교와 불가분리의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보면 그 지도인물의 절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다. 1914년의 국민회사건 등은 기독교가 3·1운동 이전에 가졌던 민족운동 내지 독립운동이었다. 국내외에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으로 일어났던 3.1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3·1독립운동은 종파와 계급을 초월한 거족적 독립운동이었지만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의 종교적 분포가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인 15명, 불교인 2명으로 되어있는 것은 3·1운동의 주도권이 기독교 측에 있었음을 시사해 주거니와, 3·1운동의 시위만세 역시 언제 어디서나 교회가 중심이 되었다. 또한 3.1운동에서 입은 참화와 피해도 교회가 가장 컸다. 수원 제암리교회의 집단학살사건을 비롯해서 강서의 사천교회, 정주교회, 강계교회, 위원교회, 북간도 노루바위교회, 서간도의 여러 교회 학살사건 등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영원히 잊지 못할 가장 가혹하고 처참한 박해였다. 3·1운동으로 말미암은 교회의 피해 상황을 보면 3월 1일부터 5월 30일 사이에 파손된 교회는 47곳이었고, 1920년 3월 1일까지의 피해 상황을 보면 57개의 교회가 불에 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