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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金政植)은 1907년 김동삼(金東三)·유인식(柳寅植) 등이 안동 임하(臨河)에 설립한 협동학교(協東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국망(國亡) 직후 안동의 유력인사이던 이상룡(李相龍)·김대락(金大洛) 등이 시국을 통탄하며 서간도로 망명하자, 그도 역시 백부(伯父) 김대락을 뒤따라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으로 이거(移去)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백부의 독립운동을 보좌하면서 독립군 기지건설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이후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김만식(金萬植)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07년 경북 안동에서 민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의 교사로서 활동하였으며 1909년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이상룡(李相龍)과 함께 결성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민은 무장세력의 양성과 군비를 갖추면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전제 아래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김만식은 이와같은 계획 아래 1911년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하여 김동삼(金東三)·이상룡 등 안동지역 인사들이 만주 길림성(吉林省)으로 망명할 때, 선발대로 만주지역을 왕래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리고 1912년에는 백부(伯父)인 김대락(金大洛)을 따라 길림성으로 솔가(率家) 망명하여 독립군 기지 개척에 공헌하였다. 그 뒤 1928년 압록강 청성진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1933년 9월 23일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