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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재출장소에 주둔한 경찰은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 삼산마을 앞 묘량 초등학교 분교로 매일 출근했다 인근에 사는 세 여성들에게 죽. 17~45 창으로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러던 차에 밀재출장소 경찰들이 매일 오. 전 시 시 사이에 광주에서 버스로 온다는 정보를 접해 공격한 것9 ~10 이다. 소식을 전해들은영광경찰서 기동대와 밀재출장소 경찰들이 급파됐지만 빨치산은 불갑산으로 종적을 감춘 뒤였다 이후 불갑산 수색에 나선 . 경찰들은 굴 하나를 맞딱뜨렸다 경찰들은 잔뜩 긴장해 조심스럽게 굴 . 안으로 진입했다 쾅 깽 하는 돌 깨는 소리가 들렸다 한 영감이 숫돌. ' ' . 을 깨고 있었다. 닭 잡아 내놓으라는 경찰 영감 이리 나왓 기다시피 굴 밖으로 나온 노인 김용채에게 경찰은 " !" 다짜고짜 빨치산 협력자 취급을 했다 산사람들 어디로 갔어. " ?" "...." " 이 새 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감히 묵비권을 행사해 라며 손과 발로 × . " 사정없이 때렸다 하지만 산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못한 김용채는 경찰. 들에게 할 말은 없었다. 이 영감쟁이는 빨갱이가 틀림없어 라며 김용채에게 수건을 뒤집어씌" " 운 후 권총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잠깐만요 저 사람은 그럴 이가 아. " . 니요 라고 한 이는 밀재출장소 주임이었다 평소 밀재출장소 보수공사" . 에 동원이 되었던 김용채를 알아본 주임이 그를 적극 두둔했다 그러. 헤 해서 김용채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김용채 가족은 경찰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일이 있기 몇 달 전에. 는 그의 동생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묘량면 삼학리 신성마을에 살던 . 그는 자기 논에 물꼬를 보러 가다가 영광경찰서 보안과장 지프차에 치 여 허벅다리 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보상은 일절 없었다 또김, . . 용채의 장남 김광길은 일제강점기 말에 김일성 장군이 축지법을 쓴다" 라는 말을 했다가 유언비어 유포죄 로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 ' ' . 평양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김광길이 조직적인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 김광길 집안은 자연스레 일본제국주의에 증오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 다 이런 정서 속에 여순사건 이후 불갑산에 진지를 구축한 빨치산의 . 존재는 삼학리 주민들과 군경의 갈등이 심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동. ' 포에게 총구를 들이댈 수 없다 며 제주도 출정을 거부한 여수 연대' 14 와 이에 호응한 시민들 일부가 무장대를 꾸려 불갑산에 입산한 것이 다 빨치산과 삼학리 신성마을 주민과의 관계는 끈끈했다 년 겨. . 1949 울 빨치산들은 주민들에게 김일성 장군의 노래 등을 가르쳤고 사격' ' ,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 3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