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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계광학교에서 본교 탄생까지
1912년 우리고장의 선열들은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기존의 서당굑육을 탈피하여 근대적 학문을 배울 교육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계광(啓光)이란 "빛을 열다"라는 뜻으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통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웅동지역 선조들의 의지가 담긴 말이라 할 수 있다.
계광학교는 1930년까지 이지역 인재 양상의 산실이었고, 1919년 우리고장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우리고장 교육기관의 모태가 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계광정신을 계승하고 지역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 웅동고등공민학교(교장 장영실)를 설립하여 현대식 중등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을 맞아 46명의 학도병이 출정하여 국난극복에 앞장섰다.
1952년 지역 주민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웅동고등공민학교에 이어 현재의 웅동중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동란의 민족수난기에도 우리고장의 교육활동은 이어져 왔으며 이 지역의 정신적 지주는 계광정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