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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리 소녀는 언니 두고 혼자 살 수는 없다 며 죽음의 대열에 합류했' ' 다 그런데 엄마를 따라온 영유아들은 그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세 . . 4 이하 아기들이 혼자 집에 갈 수 없다는 이유 로 옴팍골에서 엄마와 (?) 함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의 문만섭 년생 의 조카 문경남 당시 세(1935 ) ( 3 ) , 문덕순 당시 세 이 그런 경우다 진실화해위원회 년 유해 발( 1 ) .( , <2009 굴 보고서 옴팍골에서는 어린이와 영유아의 죽음이 예외적인 경우>) 였다 하지만 불갑산 산야 곳곳에서는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없. ( ) 山野 었다 여성과 아이가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 빨치산을 토벌한다는 명분이었겠지만 이들의 죽음은 대다수가 년 , 1951 월 일 오후 이루어졌다 즉 교전 중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포로로 2 20 . 잡힌 민간인들 특히 여성과 아이를 처형한 것이다 당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불갑산 곳곳에서 울렸다 한다 영광군 삼서면 여맹위원장이었. 던 김묘신 가명 의 증언이다( ) . 그러고 엄마가 죽으면 애기도 죽을 것 아닌가요 그래서 그 불갑산 " ? 작전에 이곳에 애기 울음 저곳에 애기 울음 참 배고파도 울고 참 얼, , 마나 거기 가 쪼깐 있는 동안 참 눈물바다였어요. . " 피난처가 아닌 호랑이굴이었다 빨치산들이 군경의 공격에 대비해 파놓은 전호 방공호 앞에 세 줄로 ( ) 세워진 이들의 입술은 새파랬다 날씨가 추웠던 탓도 있지만 잠시 후. 면 세상과 하직할 것이라는 생각에 백지장 같은 얼굴에 퍼런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거면 제일 밑으로 가 찍소리하지 않고 죽어야겠다 고 생' ' 각한 문만섭 년생 은 슬쩍 맨 앞줄로 이동했다 타타탕 하는 소리(1935 ) . ' ' 와 함께 문만섭이 넘어져 전호 맨 밑으로 깔리고 그의 등 위로 같은 마을 허홍렬 년생 과 박연수가 쓰러졌다(1934 ) . 문만섭 옆은 박연수의 딸이 있었고 그녀의 등에는 어린 딸 그 위에는 , , 박연수의 아내가 있었다 약 미터 길이의 전호에 명씩이 묻히게 . 100 3 된 것이다 약 명이 불갑산 전호에 묻힌 때는 년 월 일 오. 300 1951 2 20 후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이 안 가던 문만. 섭은 쓰라린 고통이 밀려오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직감했다 왼손으. 로 귓불을 만지니 감각이 없었다 총격에 귓불이 날아가고 오른팔까지 . , 해서 총 발을 맞았다3 . - 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