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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학생 운동을 하시는 중 불행히 경인년 육이오 사변을 당하였다. 부모를 모시고 고향 목천 지령리로 돌아가 비록 전쟁중이나 농촌 진흥 운동을 펴시다가, 다행히 서울이 수복되자, 다시 중앙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이어 노동학생 총연명, 노농청년 총연명, 독립노동당의 각 중앙집행위원을 거쳐 독립노농당 상임대표회의 비서처장, 독립노농당 외무위원장이 되어 독재를 물리치고 복지국가 건설에 힘쓰다가 여러번 옥살이도 하였으며, 한편 안성 명륜중학교장이 되어 후진 교육에 공헌하시니, 이는 정명학원을 세운 어머니와 홍호학교를 세운 할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받듦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사람은 내고 명은 아끼어 아깝게도 사십칠세를 일기로 임자 십이월 삼십일일에 돌아가니 세상사람이 많이 울었다. 부인 김정애 여사는 선산 사람이니, 정치학 석사로 교육계에 몸 바쳐 있으며, 아들 덕상은 학문에 정진하고 있다. 이제 임의 환갑을 맞이하여 종중에서 그 재덕을 기리어 이 비를 세우며, 어른께서 구상에게 비문을 명하시므로 외람함을 무릅쓰고 감히 그 일의 즐거리만 쓰는 바이다. 아아! 슬프다. 그 효우 그 언론, 그 재덕 그 인품, 타고난 바탕으로 모두 다 갖추었으니, 마땅히 정상에 올라 그 풍부한 경륜을 펴서 이 나라 이 겨레를 복되게 할 것이어늘 어째서 불의와 독재, 겨레와 국토가 갈라진 참상을 그대로 둔채 아까운 나이에 눈을 감으셨는가! 그러나, 하늘은 결코 무심하지 않도다. 어진 부인이 있어 그 위대한 정신을 이어받아 그 미진한 일을 차분히 해나가고 있으며 아들이 또한 준수하고 성실하여 여망이 매우 크니, 필연코 그 남은 덕이 자손에게 돌아가 흐르는 경사가 영원히 무궁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