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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李錫,李李錫)은 1927년 11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 ‘식민지교육 타파’를 주장하며 동맹휴학(同盟休學)을 주도하였다. 1929년 11월에는 서울에서 정종근(鄭鍾根)·권유근(權遺根) 등과 함께 학생단체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이 무렵 그는 광주학생운동으로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체포되자, ‘검속된 조선 학생을 탈환하고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라’는 격문을 제작 배포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 식민교육의 부당성을 꾸짖으며 한편으로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화를 도모한 것이다. 그러나 격문 배포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12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이석은 고향인 경북 칠곡군(漆谷郡)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부정하고 조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2월 그는 최소복(崔小福)·정칠성(鄭七星) 등과 함께 적색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赤色農民組合建設準備協議會)를 비밀리에 조직하여 활동을 전개했으나, 다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8년 2월경 체포되어 4년간 취조를 받고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