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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다. 당시 매일신보 판매업을 하고 있었으며, 1919년 3월 1일 국장에 참례키 위해 상경했을 때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는 것을 직접 보고, 귀향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귀가 후 은밀하게 거사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강내면에서 매일 산위에서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어 거사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서울의 박동완 민족대표로부터 수령하여 감추어 두었던 독립선언문 500여매 중 연기군 조치원에 사는 김재석에게 350여매를 주어, 문의면·미원면·보은읍 등지에 나누어주게 하였다. 또 나머지 150매는 50매씩 봉투에 넣어 강내면에 살고 있는 조동식(趙東植)·김봉회(金鳳會)·박준평(朴準平) 등에게 각각 나누어주어 각지에 배부케 함으로써, 인근 주민의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