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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울산기독청년협의회(EYC)는 1980년대 울산 민주화운동의 뿌리를 내리고, 1987년 6월민주항쟁을 예비하는 밀알과도 같았다. 울산NCC는 구세군, 기독교대한감리회, 성공회. 예수장로회(통합),한국기독교장로회 5개 교단이 참여하였다. 1983년 6월, 전국순회 '인권기도회'가 울산에 열린 것이 계기가 되어 결성했으며, 주된 활동은 인권위원회, 공해위원회, 산업선교위원회, 여성위원회, 청년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울산NCC는 군사독재 시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1985년부터 울산.온산 공해문제와 이주민 대책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 공해병인 '온산병'의 심각성을 전국에 알리고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참가한 YMCA중등교사협의회 탄압을 막고, 노동자 인권수호, KBS시청료 거부운동 등 사회선교 활동에 적극 나섰다.
울산EYC는 민중과 함께 하는 '청년예수'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청년조직으로, 1984년 11월, 개신교 5개교단 15개 교회 청년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후 울산지역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활동하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당시 울산EYC회원들은 1987년 6월민주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및 민주노조운동에 많은 역할을 했다. 울산NCC와 울산EYC가 중구 중앙길 40-5(성남동 190-214)에 사무실을 연 것은 1985년 7월이며 개소 이후 공안기관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1986년 4월, 온산공해문제 대책활동을 맡은 울산NCC 간사가 불법연행을 피하다 건물 옥상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울산NCC는 1986년 9월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울사협)가 출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같은 해 11월 남주 신정동에 울사협 사무실을 내면서 거점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