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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공 휘 은자 모자 께서는 부 승우의 장남으로 대정리 194번지에서 출생하셨다. 유가문에서 한학을 수학 엄격한 부친께 순종하고 거역함이 없었으니 효자요 젊은이들과 이웃에는 화목과 협동을 가리치던 스승이요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셨으니 애국자이셨다. 성품이 후덕하셔서 사랑방에는 과객이 항상 머물렀고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야학을 개설하여 청년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시어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3.1독립운동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로 뜻있는 청년들을 설득 규합 대정리 뒤산에서 저녁이면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외치셨다. 이것이 지역 독립운동의 시발이 되었다. 3.1독립운동 지역을 주동한 지도자로 일경에 피체되어 동지 10여명과 같이 구치되었으나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시고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동료들을 구하셨다. 이때 형벌 90도의 고초로 만신창이되어 40여일 후에야 귀가하셨다. 그 여독으로 오랜 고생을 하셨고 53세의 짧은 삶을 마치셨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가가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고 대통령상을 수여하였다. 배 전주이씨께서는 16세에 부군과 결혼 슬하에 5형제를 두고 많은 손자녀 식솔을 키우고 거두시느라 기한고초가 많으셨다. 자손들의 무병장수를 빌고 발복하도록 축원하여 주셨기에 오늘의 대가문을 이루셨다. 78세에 졸하셔 이곳에 합장하였다. 이 비는 국가가 주시하고 자손들이 뜻을 모아 조상을 추모하고 기리는 마음을 담아 세우다. 2006년 4월 일 립 손 명철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