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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휙 몸을 돌렸다. 트럭에 태워진 이들은 정도 떨어진 거리의 옴팍골로 이송됐다1km . 그들은 총성과 함께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고꾸라졌다 년 월 . 1951 2 일 전남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옴팍골에서의 일이다 25 . 사실 전날인 월 일까지만 해도 불갑지서가 불에 타 임시지서로 사2 24 용된 불갑국민학교에는 처형할 사람과 살려줄 이가 분류돼 있었다 그. 런데 전날의 탈출 시도에 공기가 냉각된 것이다 그나마 불갑지서 김. 순호 차석의 목숨 건 행동이 세 이하 어린이들 목숨은 건지게 했다15 . 언니 따라 골 로 간 소녀' ' 그렇다면 불갑국민학교에 구금돼 있다가 옴팍골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 은 누구였을까 용천사를 중심으로 한 불갑산 남쪽에서 국군 제 연대 . 20 대대가 빨치산과 교전 후 주민을 총살하거나 연행한 것과 달리 북쪽2 , 의 영광군 묘량면과 불갑면 지역 주민은 년 월 일 영광경찰서 1951 2 20 기동대와 함평경찰서 기동대를 피해 불갑산 주변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인 월 일 아침부터 경찰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과 묘량면의 2 21 미수복 지역이거나 좌익 성향의 마을 주민을 영광경찰서 불갑지서와 묘량지서로 연행했다 이들은 용천사 주변에서 군경에게 붙잡힌 주민. 과 같이 조사를 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 년 하반기 조사보고.( , <2008 서> ) 불갑지서에 구금된 이들은 옴팍골에서 묘량지서에 있던 이들은 시산, 재와 흘루개재에서 죽임을 당했다 결국 불갑지서로 사용된 불갑국민. 학교에 연행돼 구금됐던 이들은 영광군 등지에서 불갑산으로 피난 온 이들과 용천사 주변에 있던 인근 주민과 피난민들로 혼재돼 있었다. 대보름작전의 와중에 불갑국민학교로 끌려온 소년 박득수 년생(1938 ) 는 운명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여 명의 주민이 운동장에서 생. 200 사의 기로에 섰을 때의 일이다 같은 마을인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의 . 두 살 많은 소녀가 언니 두고 혼자 살 수는 없다 며 죽음의 대열에 " " 합류했다 세 소녀의 사연을 박득수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15 . 나보담 두 살 더 먹은 아가씨는 나하고 같은 줄에 앉았었거든요 한 " . 동네에서 상게 사니까 알아요 근디 이리 띠어 재껴 놨단 말이어요( ) . , 우리는 이 짝에 살려 보낼 사람들은 그런디 즈그 언니는 같은 줄에 . . 앉지 안해 어른들이 이렇게 있는 넉 줄 거기 가서 있는디 나 혼자 . , ' 살아서 뭣 한다냐 하고는 즈그 언니 딱 보듬고 경찰이 잡아 댕겨도 ' . 필요 없어 나 혼자 살아서 뭣한다냐고 같이 언니 따라가서 죽는다 고 . ' . ' 하며 그렁게 그대로 댈고 갔어요." - 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