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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규합 33인으로 일신단을 조직 죽기를 맹세하고 선교시장에서 수천군중과 더불어 의거를 지도하시고 인류정의와 민족자결의 대의를 외치니 시위의 대열이 도도하여 왜인의 간담을 찌르다. 당황한 왜헌의 발악적 제지 출동로 혈풍평우가 휩쓰렀으니 고선민 임전무퇴의 계 재흥함을 이를지라. 역부족 세불급함에 중중을 뒷산에 피신케 한 연후 스스로 왜헌의 총구앞에 나서 주모책임자임을 천명하고 피포되어 극형 언도를 받았으나 6년으로 감형 대구감옥에서 복영중 소위 왜국경으로 2년 6개월에 출옥하셨다. 출옥후 왜경의 가진 협박과 회유에도 추호의 굴함도 없어 가이 대호라 하셨다. 신명을 바쳐 염원하시던 조국이 광복됨에 전공을 낮추고 명리를 탐함이 없이 초부로 자적하시며 오직 조국의 통일과 번역에 여일하시던 중 서기 1968년 무신 12월 19일 향년 89세로 순절하시니 어찌 의인의 고종이라 아니하리오. 공은 고려조 태사관 휘 언부 瑥(온)이 현조요 은산부원군 영균의 17세손시고 공의 휘는 영묵 자는 지암 호는 대호 이시며 자는 대ㅠ 상홍이다. 천시 우신하여 일도찬연한 국광을 일으켜 이 민중으로 하여금 치욕의 일에 矜負(긍부)와 비참의 기에 분발을 가지게 한 공의 사실 표적이 없어 안타깝더니 독립유공자포상으로 묘표를 세워 공의 애국의기를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