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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구 전투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 직후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북한군 제2군단 제2사단의 공세를 맞아 춘천에서 이를 방어한 전투를 가르킨다.
개전 당시 북한군 제1군단은 서울 점령을 목표로 삼아 연천과 운천에서 의정부로 이르는 축선과 개성에서 문산으로 이어지는 접근로에 전투력을 집중하였으며, 제2군단은 춘천과 가평을 점령하고 서울 동남부로 진출한 후 국군 주전력의 퇴로를 차단.섬멸하기 위하여 화천.인제에서 춘천을 거쳐 가평.홍천으로 이어지는 접근로에 중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북한군 제2사단은 개전 1시간 만에 화천과 춘천을 잇는 길목인 38선 남쪽의 모진교를 점령, 국군 경계진지를 돌파하며 남침을 시작하였다.
전방에서 철수한 국군 제6사단은 임부택 중령이 지휘하는 예하 제7연대에 춘천 소양강 북쪽 164고지에서 우도산 일대에 배치된 제19연대와 함께 주저항선을 구축하여 북한군을 방어하도록 지시하였다. 6월 26일 오전, 7연대 1대대는 옥산포를 통해 북한강을 건너려 시도한 북한군을 맞아 치열하게 항전하였다. 이때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 심일 중위가 육탄공격을 감행하여 자주포 2문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27일까지 소양강변과 봉의산 일대에서 적의 공세를 저지한 후 철수하였다. 28일까지 금병산과 원창고개에서 방어전을 수행한 제6사단은 서울이 함락됨에 따라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나, 사단이 담당한 춘천지구 및 인제-홍천 일대의 전투에서 사상자 6,792명, 포로 122명 및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등 북한군 제2군단에 큰 타격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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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제6사단이 단독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막아냄으로써 춘천과 홍천축선을 통한 적의 진출을 지연시켰고, 이는 적의 초기 계획이었던 서울 점령 후 국군 전력의 포위, 섬멸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동시에 국군은 주력부대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한강 방어선을 구출할 수 있었고, 최초의 유엔군 참전 전력인 미 제24사단이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의 향방을 가른 대단히 의미있는 전투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