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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된 불갑초등학교에 구금됐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박종한이 아들이 경찰 편에서 일하고 있다 고 하" " 자 지서장은 그에게 함평경찰서장의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 박종한. 이 함평경찰서에 간 사이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년 월 . 1951 2 일 불갑초등학교에 구금돼있던 사람 중 일부가 탈출하다 붙잡힌 것 24 이다 결국 경찰이 살려 주기로 했던 박종한의 아내 심복치 당시 . ( 5 3 세 며느리 조복순 당시 세 도 옴팍골에서 총살 당했다 아들 박득), ( 20 ) . 수는 년생 는 나이가 어려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1938 ) . 빨치산 빠져나간 불갑산엔 민간인들만 ▲증언자 박득수 운암마을 박득수 가족은 옴팍골에서 명이 사살되. 2 었다 박만순ⓒ 이처럼 제 사단 연대 군인과 영광경찰서 소속 경찰은 월 일부11 20 2 20 터 일까지 불갑산 일대와 인근 마을을 다니며 인간 사냥을 했다 군25 . 경의 대보름작전 은 왜 시작됐고 희생 대상은 주로 민간인이었을까' ' , ? 년 월 여순사건 직후 빨치산들은 불갑산으로 모여들었다 주봉1948 10 . 인 연실봉은 해발 에 불과하지만 함평군 해보면과 영광군 불갑516m · 묘량면 일대에 산자락이 형성돼 있고 인근 산과의 연계가 용이해 빨, 치산 활동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근 주민들이 빨치산에 우. 호적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 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