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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 직산 김창열(원술)선생 기념비 선생은 동강 김우옹선생의 13대 손으로 아명은 원술, 자는 성무 호는 직산, 본관은 의성이다. 서기 1897년 정유 5월 12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동 사도실 535번지에서 휘 철림공의 차남으로 출생하셨다. 선생은 1910년 치욕적인 경술합방조약이 체결 되었을 때 불과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을사늑약 5적을 성토하는 등 깨어있는 민족의식으로 족형 심산 김창숙 선생을 도와 '유림단 사건'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1919년 마침내 거국적인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약관 23세의 몸으로 배상윤,서병준,백성흠, 노기하, 박경하, 김귀진 등 수많은 태극기를 손수 만들어 4월 2일 성주시장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나, 잔혹한 일경들의 총칼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채 좌절되었고 상기 6명의 동지들과 대구형무소에서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후에도 줄곧 선생은 강인한 항일의 지조로서 겨레의 독립을 희구 마님내 해방을 맞아하였으나 일경들의 모진 고문으로 잃어버린 건강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1949년 기축 11월 24일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