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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불갑산에서 총소리가 울렸고 방금 전에도 여기저기서 탕탕' '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박순용도 피난 가지 않은 사람. 들이 변을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곧 아이가 나오는데 집을 떠날 수는 없었다 박순용은 두 손을 모아 빌며 군인에게 사정했다 군인 양반. . " , 하루만 살려 주씨오 하지만 처절한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 요 개." . " × 끼 군인은 총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 결국 아기를 낳기 직전의 임산부와 동서 한 살짜리 아기는 집 앞에서 , 총살 당했다 그리고 박순용은 신광 방면으로 연행되는 도중 목숨을 . 잃었다 진실화해위원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 2008 )『 』 불에 타 숨진 외할머니 박순용과 같은 운암마을에 살았던 장재수 년생 는 그날 새벽 군(1936 ) 인의 공격이 시작되자 운암마을 뒷산을 넘어 산안 위쪽으로 피신했다 . 이후 용천사 앞 밀재를 지나 다음날 새벽엔 장성군 태청산까지 갔다 . 그는 함평군 신광면 매형 집에 있다가 한 달 후에 마을로 돌아왔다 . 집을 살펴보던 소년 장재수는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집안에 외할머니가 불에 타 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인쟈 그 뒤로 와서 집을 보니까 집은 싹 불났는데 외할머니가 " , , 거기서 방에서 타서 흩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렇게 요렇게 뒤져보. 니까 그 머리 덜 탄 자국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외할머니가 여기서 . 돌아가셨구나 하고는 외할머니 원 고향이 신광면 가덕리라니까요 가, . 덕리 친척한테 얘기를 했어요 진실화해위원회 년 유해발굴 ."( , 2009『 보고서 )』 그의 외할머니 방매실 당시 세 은 워낙 고령이라 군경의 소개령에도 ( 79 ) 움직이지 못하고 집에 그대로 있었다 집안에 노인이 있는 것도 아랑. 곳하지 않고 군인들은 불을 질렀다. 월 일 새벽 시 군경토벌대는 불갑산 빨치산을 잡아들인다며 이른2 20 5 바 대보름작전 을 개시한다 그들은 거의 총 한 방 쏘지 않고 불갑산' ' . 을 점령할 수 있었는데 빨치산이 이미 산을 탈출했기 때문이었다 그, . 러자 군경은 불갑산 인근 마을을 이 잡듯 뒤져 마을에 있던 주민들을 현장에서 사살하거나 연행했다 앞서 언급한 광암리 운암마을 임산부 . 김재임과 동서 세 아기도 희생자였다, 1 . 다른 곳으로 피난 간 이들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박종한 당시 ( 세 집안이 그런 경우였다 운암마을 박종한 가족은 년 월 54 ) . 1950 12 소개령에 따라 해보면 산내리 송산마을로 피난갔다 대보름작전 당일. 에도 그의 가족은 용천사 인근 구수재를 넘어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까 지 갔다 하지만 불행히도 경찰에게 발각돼 박씨 가족은 불갑지서로 . - 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