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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하(權元河)는 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동년 8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소재 신흥무관학교 제4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20년 2월 군정서(軍政署)의 밀명을 띠고 입국하여 군자금 조달 및 무관생도 모집 등 활동을 하다가 동년 7월에 최재화(崔載華)·조강제(趙强濟)·배승환(裵昇煥)·김영철(金永哲) 등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조선일보 지국장을 지내면서 은밀히 항일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27년 6월에는 김상기(金相起)·남병태(南炳台)·박창호(朴昌鎬)·장대발(張大發) 등과 함께 예천군내 청년대회를 개최하고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의하는 등 구국운동을 하였다. 그는 예천청년동맹회의 집행위원으로서 전예천청소년운동(全禮泉靑少年運動)의 통일을 기하여 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