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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파주 임진의 나루를 뒤에 지고 의주로 가는 국도의 길목이며 군사의 거점이어서 옛부터 자주 전란에 휩쓸린 곳이다. 가까이 이씨왕조에 들어서도 임진왜란에는 왜군의 북상과 그 퇴거의 길이 되고 추격의 명군도 벽제관 싸움에 앞서 여기에 진을 쳤고 선조 26년 9월 환가가 임진나루의 싸움터를 지날때 진망수사를 제지내게 한 곳이고 인조 반정 시 이천부사 이중로와 장단부사 이서가 군사를 이끌고 합류한 곳도 여기이고, 인조 25년 이괄의 반군이 여기서 관군을 물리치고 남하했고 그 5년에 금군이 강홍립을 앞세우고 여기를 거쳐 동진했고, 병자호란에도 청군이 여기를 짓밟고 남하했다. 이제 6.25사변을 겪고도 북역의 공산군을 지호의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으니 국토양분도 슬프거니와 이처럼 애끓는 시련이랴. 그러나 이런 역사환경에서 우리 파주군민의 피속에는 유달리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정신이 연면히 계속되어 온 것인데 1919 기미3.1운동이 일어나자 군민의 끓는 피는 어찌 이를 좌시할 수 있었으랴. 우산 심상각 선생을 주도로 한 19인의 결사가 즉각 조직되고 군민의 동원 그 시기의 결정 결행작전의 책정이 순조로이 진행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