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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4년 6월 Special Theme   제14회 ‘의병의 날’ 기념 특집 ‘대한제국기 후기 의병의 봉기와 일제의 의병 탄압’  은 많을 때는 4,5백 명에 달했다. 그 의 부대원들은 정주원이 체포된 후에도 의병부대를 별도로 조직하 여 활동을 계속하였다. 당진 소난지도에서는 1908년 3월 15일 홍원식 의 병과 일제 경찰대와의 격전이 있었다. 소난지도 의 병은 홍성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대와의 전투에서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동쪽의 해안 끝까지 밀렸으며, 백여 명의 의병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 었다. 일본경찰대는 의병으로부터 노획한 많은 식량 에 석유를 끼얹고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천안 · 아산지역과 공주와 논산, 금산 등 공주권에 서도 의병항전이 활발했다. 이 지역은 차령산맥의 동남쪽 지역으로 1905년 전후의 중기의병기까지는 활동이 미미했다. 그러나 1907년 8월 이후에는 충북 지역과 경계에 있는 목천 지역과 계룡산 주변인 공 주와 논산 지역, 그리고 전북과 산악 지대로 경계하 고 있는 금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의병 항전이 전개되었다. 천안에서는 주로 목천과 병천 일대에서 일어났다. 아산지역에서는 온양 일대를 중심으로 의 병항전이 전개되었다. 1907년 11월에는 아산군 군 아(郡衙)에 들어가 군수를 위협하고 무기를 취해갔 다. 또 분파소를 습격하여 순검에게 중상을 입히고 순검 복장, 군도, 총기류를 빼앗아 갔다. 1908년 10 월에는 신창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였으며, 아산 장재 동에서 일본 헌병 및 순사대와 교전을 벌였다. 공주와 논산, 금산 지역은 산악을 끼고 있기 때문 에 의병의 항전이 용이하였다. 이 지역 출신 의병들 은 전북 지역과도 인접한 관계로 호남지역으로 들어 가 활동하기도 하였다. 1907년 10월말 공주에서는 의병발기소의 이름으로 미곡을 외국인에게 매도하 정주원 의병장과 휘하 소대장 이상덕 체포 기록(『폭도에  관한 편책』 1908년 7월 27일자, 인천일보 제공). 당진 소난지도에 거점을 두고 의병전쟁을 벌이다 순국한  100여명 의병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소난지 도에 건립된 ‘소난지도 의병항쟁 추모탑’(국민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