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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7)♣ 미완의 혁명 4.19 민주혁명 61 주년 기념사 4.19민주혁명은 미완성의 혁명인가 4.19혁명은 시민과학생들이 外形的으로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大都市위주로 전개되었고 마산상고 재학생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피지도못하고 김주열은 행방불명 27 일만인 4월 11일 마산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참혹한 모습의 屍身으로 떠올랐고 이를 본 馬山시민들은 獨裁打倒를 외치며 2차 義擧에 돌입하게 된 3.15 부정 선거 2차導火線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12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1960.3.15 제 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를 하고 野黨參觀人을 逐出하면서 투표함 바꿔치 기와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多數의 死傷者가 발생하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拷 問을 가했다. 그리고 1960년 4월 18 일에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 던 고려대생들이 3.15부정선거 규탄대회 후 귀가 도중 이정재, 임화수, 류지광등 정치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