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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일제가 물러난 해방공간에서 건준 청년간부와 ’46년‘대구 10 총파업’ 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동지는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안동사범학교,포항 성지상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운둔생활을 하였다. ’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에서는 둘째 형인 김상도 선거운동을 하면서 다시 현장에서 활동하였다. 비록 자 유당 정권과 연계되어 있었으나 ’56년에는 서울대 문리대에‘청맥전선’이라는 비밀 써클을 조직하기도 했다. 한편, 4월 항쟁이후 경북노동연합회 지도고문, 경 북피학살자유족회 고문, 교원노조 등에 개입하였다. 5.16 쿠데타 이후 전쟁 기간 다양한 형태로 잔존하던 활동가들이 전위 조직을 형성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후 동지「청맥」지를 창간하여 통일운동체를 결 성하여 활동하다가 ’68년 통혁당사건의 으로 구속되어 사형을 언도 받고 ’69년 7 월 10일 사형 집행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대중의 통일열망을 잠재우고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선건설 후통일론’이외의 다른 모든 정책이나 활동은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합리적인 통일방안의 제시나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모두 반 공법으로 다스려졌다. ’68년에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된 소위‘통일혁명당’사건은 서울시당 책임 자 김종태, 민족해방전선 책임 김질락, 조국해방전선 책임 이문규, 전남도당 창 당준비위원장 최영도 등 총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60년대 최대 의 지하혁명당 조직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과연 이들이 비록 북한과 연계되었다고 사형되어야만 했는가? 등 많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단절된 전통적 통일운동, 즉 남북을 포괄 하여 전국적 차원에서 혁명적 당 역량을 건설하여 외세와 매판세력을 축출하고 조국의 통일을 이룬다는 전통적 운동의 맥을 남한 내에서 복원시키려는 운동이 었다. 끝내살리라 |63| 김종태 (당시43세) 1927년 출생 1945년 건준 청년간부 1946년 대구 10월 총파업 피신 동국대 경제학과 졸업 안동사범학교, 포항 동지상고 교사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김상도 의원 비서 1956년 서울대 문리대‘청맥전선’조직 1960년 경북 노동연합회 지도고문 경북피학살자유족회 고문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 1969년 7월 10일 사형집행 |6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