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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영산인으로 1912년 8월 14일 거제향교 당장을 지내신 신주송(辛周松)공의 맏아들로 하청면 하청리 향제(第)에서 태어나시었다. 어려서부터 재기가 출중하고 용모가 준수하였으며 거제공립보통학교 동래고보.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신 후 교육입국의 신념으로 젊은 나이에 교단에 투신한 이래 평생을 오직 한 길만 걸어 오셨다. 의령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출발하여 향리 하청초등학교 교사. 통영군장학사, 하청장 목국민학교장을 역임하신 후 거제교육구 초대 교육감으로 2대까지 근속하며 향토문화 강달과 교육발전에 매진하셨다. 선생께서는 6.25 한국전쟁으로 남하한 수많은 피난민 자녀의 교육을 위해 어렵고 힘든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해 나갔고 충무공의 첫번 승전을 이룬 옥포대첩의 정신을 거제정신으로 승화하기 위해 기념탑을 건립하고 충무공의 정신을 거양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었다. 거제인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거제의 노래〉 제정을 주도하셨고 낙후된 교육환경 개선에 교육력을 발휘하셨다. 재건국민운동 거제군 지부장. 경상남도교육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세우신 업적으로 제 1회 거제군민 대상을 수상하시어 그 빛을 더하시었다. 1995년 9월 25일 향년 84세로 장서(長逝)하시어 용등산 선영 아래 묻히셨다. 선생의 슬하에 4남 4녀를 두시니 태생. 동우 철생. 임생. 춘자, 선자. 윤자. 경미가 있다. 오늘날 물질만능과 가치관의 혼돈으로 참 인간애의 정신이 메말라가는 현실에서 선생 같으신 분을 그리워하고 기다려지는 우리의 경경(耿耿)함이 더욱 애틋한지라. 오로지 육영일념. 애향 충효의 사서 평생을 바친 교육자로 선생의 그 강직한 기개(氣槪). 치밀한 두뇌, 온화한 심흉(心胸)을 기리어 생전의 지기(知己). 후학들이 성력을 모아 한 조각돌에 그 업적과 일대의 자취를 간추려 선생의 높 은 뜻을 기념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2009년 9월 일 하청면지 편찬위원회 위원장 活石(활석) 김백훈 짓고 振宇(진우) 허태동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