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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식선생은 서울 송현동에서 태어났다. 186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에 있을 때인 1884년 12월 아우 홍영식이 김옥균 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자 전 영의정이었던 아버지 홍순목은 자결하고 그도 자결하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 때에 부친과 그에게 사면령이 내려지고 다음해에 춘천관찰사에 제수되어 여러 번 부임하라는 독촉을 받았으나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1895년 8월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있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결코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4년에 해주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부임하지 않았으며, 그 후 의정부 찬정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사직소를 올리고 끝내 받지 않았다. 상소 때마다 직함을 쓰지 않고 「미사신(未死臣)」의 세 자만을 썼으며, 나라의 기울어져 감을 통탄했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아들에게 처사례로 장례 지낼 것을 당부한 다음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