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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지구 전적비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다. 이곳이 돌파되면 10㎞ 남쪽일대까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구가 적 포병 사격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국군 1사단은 사단 좌측에서‘왜관-낙정리’(의성군 단밀면, 다부 북방 43㎞)를 방어하고 있던 미 25사단이 8월 1일 경남 마산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이 지역을 맡아 제11·12·15연대 등 3개 연대로 북한군의 남하를 막는 지연전을 펼쳐 왔다. 8월 12일 주 저항선인 낙동강 방어선으로의 철수 명령에 따라 이날 밤 8시 다부동 일대의 주저항선으로 철수를 시작하였다. 사령부를 동명 초등학교에 두고 예하 3개 연대에 방어 지대를 부여하였다. 국군 1사단은 이들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이 일대 설정된 저항선에서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낙동강 방어 작전 중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이곳 일원에서는 대구를 놓고 피아 간에 유학산, 328고지, 837고지, 674고지, 볼링장, 가산산성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상 뿐 아니라 6·25전쟁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가운데 837고지는 대구 사수의 최고 요충지였고, 유학산은 9번 328고지는 무려 15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피아간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