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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연혁
승가사는 거금 1300여년전 신라 경덕왕 15년(단기 3089년) 수태선사가 세칭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일컬어 지던 당서역 신승승가대사가 한토에 래화하였다는 도덕을 사모하여 삼각산 남쪽의 승지를 가리어 석굴을 개착하여 굴암자를 조성하고 승가대사상을 모형하여 사명을 승가사라 하였다.
그리고 절 뒷편 거대한 암벽에 석가모니 상을 조성하여 국가에 건곤의 변과 한재수재가 있을적에 석불(보물 215호)전에 기도하면 큰 영험이 있으므로 역대 군왕이 친히 거동하여 3일, 7일씩 각각 설재를 베트는 등 국태민안을 기원하느 호국도장으로 유명하다. 신라, 고려, 조선때까지는 국령으로 사를 중창하여 왔으며 조선태종7년에 각종을 통폐합할때에 본사는 조계종에 속하였다. 특히 신라, 고려 양조에 본사는 국가적인 신앙의 중심지였고 배불 숭유로 어려웠던 조선초기 고승인 함허선사가 본사에서 득도하였으며 정조4년에는 성월당선사가 석불전에서 신묘장구다라니 10만편을 지송하고 득도하여 팔도승통이 되어 당시 쇠잔한 교풍을 크게 일으키는 등 수많은 인천지사가 이곳에서 배출되어 중생을 교화하였고 마애여래불과 약사여래 부처님의 신묘한 가피와 약수의 효험은 많은 이들의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였으며 억조창생의 기도처로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가졌으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치르는 동안 사찰 본연의 사명은 상실되었다.
그후 종단정화를 계기로 비구니 도원스님이(단기 4288년) 주지로 취임하였고 다시 비구니 상륜스님이(단기4304년) 주지로 부임하여 불교중흥의 대원을 세우고 도장장엄과 중창불에 착수하여 본사 창시이후 미증유의 대불사로 성지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으며 정호스님이(서기 2005년) 주지로 부임하여 선원 요사채를 새로이 중창하고 상수도 시설을 일신하여 스님과 신도들의 편리에 크게 기여하였고 중생들의 교화에 힘써 지금에 이르렀다.
단기 4345년 불기 2556년 서기 2012년 3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