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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正菴) 이종훈(李鍾勳)(1856~1930)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유사리 출신, 본관은 광주, 1894년 동학농민운동 중군으로 우금치 전투에 참가하였고 1902년 손병희와 일본으로 망명하여 권동진, 오세창 등과 만나 쇠약해가는 국운과 부패와 혼란에 찬 사회를 통탄하고 구국의 방도를 논의하였다. 1910년대 천도교의 비밀결사 민족문화수호운동본부와 천도교 구국단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최고령으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2년 7월 고려혁명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어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만주에서 병사하였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