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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었다 중대장이 정순영 가명 을 끌고 가려 하자 그녀의 아버지가 완강. ( ) , 하게 저항했다. 제 딸을 왜 데리고 가려 하십니까 하지만 중대장은 막무가내로 정순영을 " ?" 잡아끌었고 그때 정순영의 아버지가 앞을 가로막았다 죽으면 죽었지 내 . " , 딸을 못 데리고 간다 이놈아 딸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 이성은 마비되었다 탕 하는 소리와 동시에 정순영 아버지의 목이 꺾였다. ' ' . 이어진 총성에 정순영도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와 딸이 동시에 세상과 작별. 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 2007 )『 』 군대 안 보내려 온 가족이 애쓴 이유 남산뫼 현장에 선 정응모 형 정병모가 남산뫼에서 학살됨 박만순( ) ▲ ⓒ 정응모 년생 정병모의 동생 가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자 집안은 초상집 (1936 , ) 분위기가 됐다 정응모의 큰 형 정병모가 년 월 일 남산뫼에서 . 1950 12 7 11 사단 중대에 의해 학살되자 정씨 집안은 군인을 극도로 혐오하게 됐다 정5 , . 응모의 어머니 이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 ' 는 생각이었다 특히나 막내 응모를 군대에 보내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 이후 정응모는 광주지방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몸무게가 이 , 42kg 나왔다 체중 미달이었다 이후로도 년에 두번 꼴로 총 번이나 신체검사. . 1 , 9 를 받았지만 매번 체중 미달이 나와 결국 입대하지 않았다 그가 일부러 몸. 무게를 빼지는 않았지만 정응모도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형님 , . 정병모를 죽인 군인들이 싫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살의 나이로 형을 포. 15 함해 집안사람 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니 가 난 지 년 만에 나온 7 . 6.25 5 신체검사 통지서가 반가울 리가 있겠는가. - 318 -